마케팅 믹스와 테라플루

마케팅 전략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요소가 마케팅 믹스, 즉 4P다. 4P는 제품(Product), 가격(Price), 촉진(Promotion), 유통(Place)를 의미한다. 테라플루만 잘 이해해도 마케팅 믹스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테라플루로 풀어보는 마케팅 믹스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테라플루는 따뜻한 차 형태로 복용할 수 있는 감기약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밤에 먹는 테라플루 나이트 타임의 성분을 살펴보면 아세트아미노펜, 페니라민말레산염, 페닐레프린염산염이 원료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타이레놀’의 성분이다. 타이레놀은 아세트아미노펜 단일성분으로 조제되어 해열 진통 효과를 낸다.

페니라민말레산염은 항히스타민제 즉 알레르기약이고, 페닐레프린염산염은 코막힘을 완화해주는 성분이다. 결국 테라플루라는 감기약은 타이레놀 한 알보다 약간 더 많은 양과 코막힘을 완화해주는 성분, 알레르기약을 물에 잘 녹도록 만든 제품인 셈이다.

하지만 테라플루는 6포에 7,000원~8,000원이라는 값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고 타이레놀은 10정에 2,000원~3,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알레르기약 성분도 같이 있으니 그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더라도 알레르기약 10정이 마찬가지로 2,000원~3,000원에 판매된다. 코감기약도 10정 기준 2,000원~3,000원에 판매된다. 얼핏 비교해보아도 테라플루가 훨씬 비싸게 판매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테라플루는 1포에 1,000원이 훌쩍 넘는데 동일한 성분의 타이레놀, 알레르기약, 코 감기약 각 1정은 600원에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물에 잘 녹도록 특수 제조했으니 더 비싸게 파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약은 주사로 주입할 때 가장 잘 흡수되고, 점막이 그 다음이며, 위로 섭취할 때 가장 흡수가 더디다. 어차피 위로 흡수된다는 점은 동일하다면 굳이 차 형태의 테라플루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테라플루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필자도 테라플루를 선호한다. 일일이 타이레놀, 알레르기약, 코감기약을 다 챙겨 먹기 귀찮고 감기에 걸리면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는 게 좋은데 테라플루를 먹으면서 따뜻한 물도 마시는 게 감기 퇴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왠지 일반 감기약을 먹기보다 테라플루를 먹을 때 감기가 더 빨리 낫는 느낌이다. 그리고 테라플루 나이트 타임을 먹으면 밤에 잠도 잘 온다. 그래서 항상 테라플루를 먹는다. “테라플루가 도움이 될까?”라고 미심쩍어하면서도 말이다.

테라플루는 마케팅 믹스를 잘 활용한 케이스다. 일단 제품 전략이 특이했다. 감기에 걸리면 오한이 들고 춥다. 이때 따뜻하게 마실 수 있는 차 형태의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제품 전략을 사용했다. 감기에 걸려서 오한을 느끼는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았다. 맛도 레몬 맛, 베리 맛으로 실제 차와 같이 만들었다. 비타민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게끔 착각을 준다. 물론 비타민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제품도 낮에 먹는 테라플루 데이 타임과 밤에 먹는 나이트 타임으로 구분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나이트 타임에는 알레르기약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졸음을 유발한다.

다음으로 제품 전략에 걸맞은 촉진 전략을 사용했다. 차처럼 마실 수 있다는 점을 광고, 패키지, PR 등 모든 커뮤니케이션 채널에서 강조한다. 최근에는 광고 모델을 김이나로 변경하면서 따뜻하게 마실 수 있다는 점을 더욱 강조하기 시작했다.

유통 전략은 의약품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약국이라는 공간으로 제한되지만, 꼭 약국의 진열대에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소비자가 직접 집어서 선택한 뒤 약사에게 구매하겠다고 할 수 있는 구조다. 패키지가 크고 비교적 널리 알려진 제품이기 때문에 가능한 진열 방식이다. 타이레놀처럼 패키지가 작은 경우 약사가 꺼낼 수 있는 진열대에 보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테라플루의 경쟁자가 있었지만,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이유다. 테라플루는 알고 대체품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테라플루가 진열되어 있으면 테라플루만 골라온다. 약사들도 소비자가 골라오면 어쩔 수 없이 내줘야 한다.

제품 전략이나 촉진 전략, 유통 전략을 종합할 때 가격 전략을 비교적 고가로 유지할 수 있다. 다른 감기약에 비해 테라플루가 비싼 이유다. 사실 테라플루 한 포 먹느니 판피린이나 판콜에스 두 병 먹고 따뜻한 물 한 잔 마시는 편이 가성비 측면에서는 더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테라플루를 찾게 된다.

마케팅 믹스란 바로 이런 개념이다. 똑같은 성분을 가진 의약품을 다르게 조제해서 다른 가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에 걸맞게 촉진 전략을 수립하고 유통 전략을 수립한다. 물론 테라플루의 제품 개발 노력을 깍아내리고자 함은 절대 아니다. 아세트아미노펜과 알레르기약 성분, 코감기약 성분의 적절한 비율을 찾고 이를 물에 잘 녹는 형태로 배합하여 포 형태로 제조하는 기술은 쉽게 따라 하기 어렵다. 게다가 여기에 자연스러운 맛을 첨가하려면 더 많은 제품 개발 노력이 필요했을 테다. 단순히 마케팅을 포장하는 기술로 치부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만약 누군가 마케팅 믹스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자. 일단 감기에 걸리고 테라플루를 사서 먹으라고. 그러면 마케팅 믹스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테라플루에 함유된 타이레놀은 1일 4,000mg 이상 투여할 경우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 과다 복용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 그리고 테라플루 나이트 타임은 졸음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낮에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함부로 남용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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